트위터 시작!

분류없음 2009/09/15 19:01
친한 형이 권해서 트위터를 시작합니다. 블로그랑 비슷한듯 하지만 블로그의 진지함이랄까 그런 것이 별로 없는 가벼운 기분이네요. 마치 메신저를 하는 듯한 느낌.

뭔가 썰을 뿜어 내야 하는 것은 블로그에 쓰고, 그냥 간단한 아이디어나 생각은 트위터로 남겨야겠습니다.

블로그도 제대로 못 하면서, 트위터까지 손대다니,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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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검색을 통해서 알게된 책.

한문학 연구자로 유명하신 정민 선생님의 책으로 다산 정약용의 공부법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제목을 먼저 살피자면 공부법 혹은 독서법이 아니라 지식경영법이다. 이는 다산의 공부법이 막연히 – 곧 내가 하듯이 –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다산이 항상 필요한 책만 읽고 저서를 작성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영'이라는 두 글자가 의미하는 바, 대단히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부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 책이 '지식경영법'이라는 그리 울림이 좋지 않은 제목을 갖게 되었다.

다산의 공부를 대단히 체계적인 것으로 보아서일까? 이 책의 구성 역시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목차인 1050200목은 다산의 체계적 공부를 정민 선생님이 흉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겠지만 다산은 미리 범례를 세워놓고 개요를 작성해 놓은 다음 책을 썼다고 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라. 10개의 큰 꼭지를 마련하고 다섯 장을 각각 안배하고 세세히 4조목을 설정하여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 중에서 10강에 해당하는 것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단계별로 학습하라
2.
정보를 조직하라
3.
메모하고 따져보라
4.
토론하고 논쟁하라
5.
설득력을 강화하라
6.
적용하고 실천하라
7.
권위를 딛고 서라
8.
과정을 단축하라
9.
정취를 깃들여라
10.
핵심가치를 잊지 말라

공부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아주 귀한 책으로 여겨진 것은 당연하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미친척 책을 읽어보았다. 토요일에 배송되었고 월요일에 읽기를 마쳤다.

이 책은 그저 교양으로 읽히기보다는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서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쓰여진 것이라고 했다. 공부하는 사람들, 특히 논문을 쓰거나 저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읽어보고 다산의 지식 생산, 관리를 참고하여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산의 카드 작업 과정, 서신을 통한 의견 교류, 질정, 제자들과 함께 정보를 조사하고 조직하여 새로운 저작을 만들어내는 과정 등을 상세히 보여주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운 내용의 연속이었다. 마침 인덱스카드 쓰기를 결심하였는데 이렇게 카드 작업의 대가 – 다산은 물론이거니와 정민 선생님도 – 를 알게 되었고 그 과정을 제법 꼼꼼히 살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일요일 아침 7시쯤 교회에 가는 1시간 여의 버스 여행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십상인데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 책을 읽으니 잠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 약간 번잡한 감이 들었다. 위의 10강을 보더라도 초반에는 매우 방법적인 측면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방법보다는 다산의 신조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내용이 나오게 된다. 즉 지식경영법은 전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지식경영법보다는 경영신조, 경영원칙 등이 소개된다. 책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그의 지식생산의 과정이기 때문에 후반에는 전반부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언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후반부에도 반복적으로 그의 카드작업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전반부는 매우 긴장감있게 책이 읽히는데 후반부는 다소 지지부진한 감이 있다. 다산이 <성호사설>이 번잡하여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이 책도 ‘다산이라면 더 추려서 간략하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 독서하는 사람이 감히 입에 담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책 읽기가 고달파진다. 졸린 눈 비벼가면서 하는 혼자만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후반부 중심이 된다고 보는 다산의 여러 실천적인 원칙들의 중요성이나 그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목적 – 저자가 다산의 그 글을 몇 번을 읽어가면서 어렵게 알아내었을 그 알짜배기만을 알고자 하는 저속한 욕심 – 을 지닌 독자에게는 뒷부분의 이야기는 누가 해도 좋을 소리,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불과하다. 특히 맨 마지막 ‘조선중화법’은 거의 조선후기 한시의 몇몇 경향을 해설하는 느낌이었다. 다 좋지만 이 순간 저속한 욕심을 가지고 텍스트를 대한 내게는 그리 감명을 주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박희병 선생님의 <선비들의 공부법>이라는 책이 있다. 저속한 나는 또 공부법을 알아내고자 이 책을 들추어봤지만, 옛 선비들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음에 그만 나는 책을 덮어버렸다. 그 공부법은 修身법이었다. 그에 비하면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은 저속한 나의 입맛에도 괜찮은 책이다. 독자의 싸구려 욕심 때문에 다산 선생의 공부에서 배워야 하는 저러한 실천적인 원칙의 깊은 맛은 거부하고 얕은 맛, 작은 기술만 찾아서 그 맛을 전부 알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건진 것은 일단 다산 선생의 독서와 저술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정수를 깨쳤다고 볼 수 없지만.


일전에 같이 공부하는 형님이 권해준 에코의 논문작성법도 쉬는 마음으로 틈틈히 다시 읽어 보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시 읽기는 새롭게 읽기인 것 같다. 이 책도 지금은 이렇게 대강 읽어서 재미가 있네 없네 하지만 한 번 더 읽으면 그 초점이 또 달라질 것 같다. 분명 점점 뒤로 뒤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가 재미없게 느꼈던 그 부분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바로 그 탁월한 생각이 그 방법을 운용하였던 것이다. 다음에 읽을 때는 그의 문제 의식에 좀더 무게를 실어 읽어 보아야겠다.


막 쓴 글이라 내용 정리가 깔끔하지 않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들? 책을 많이 읽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사람들.

이 책을 권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 글쎄, 한 가지라도 더 알면 더 넓게 볼 수 있으니까... 도움이 안 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고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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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공부를 많이 안 하는 사람들이 효과적인 공부방법, 효율적인 공부법 등을 찾게 된다. 공부를 많이 하면 그런 것 따로 찾을 이유가 없다. 그저 하다보니 어느샌가 묵직한 내공이 쌓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내공은 장차 공부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도움을 주는 일종의 비계가 될 것이다. 무협지를 보라, 현문정종의 내공을 익힌 곽정은 진보는 느렸지만 착실하고 또 확실했다.

복학하고 나서 공부법을 좀 열심히 찾았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면 이러한 몸부림 자체가 공부하기 싫다는 의사표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좋게 생각하자면 똑같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좀 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고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다.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자세히 정리도 해보고, 그냥 쭉 읽고서 다시 읽기도 해보고(여러 번 읽는 이 방법이 사실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통 의지로는 되지 않고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 마인드맵, 컨셉맵 기타 등등 다양한 방법을 써 보았다. 졸업하기 전에 나와 같이 수업을 들은 후배들은 기억할 것이다. 맨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는 27살의 철없는 선배를.

또 정보력은 검색에 있다는 생각에서 무리해서 노트북-랩탑-을 장만, 필기와 마인드맵을 해 본 적도 있었다. 이 방법은 확실히 검색은 잘 된다. 다만 스스로 느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시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트북은 항상 들고 다니기도 어렵고 켜고 끄는 것도 귀찮다. 그래서 나름대로 작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가긴 했지만 거기까지이다. 노트북에만 존재하는 데이터베이스였다.

요즘에는 인덱스카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사실 인덱스카드 혹은 독서카드를 쓰는 것은 강유원 선생님의 논문 쓰기 기사에서 처음 알았다. 그 선생님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옮겨적고 거기에 논평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카드를 썼다고 하였다. 그러나 직접 해보려고 하니 이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강 선생님의 카드 쓰기는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것이다. 즉 어떤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에 비추어 내게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을 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성호사설 인사문의 <당론>을 읽었다면, 그것이 내 학위 논문 주제에 한 마디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카드에 옮겨적고 논평을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옮길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짧아서 어떤 목적이 있고 이미 결론을 내려 놓고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입장에서 선학의 연구 결실을 꼼꼼히 들여야 보고 기억하고 싶었다. 어떤 텍스트를 읽고 취사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도 다른 걱정이 많았지만 가장 큰 걱정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인덱스카드 작성법을 두루 살펴 보았다. 우선 강독모임의 형님이 권해주신 에코의 논문작성법을 읽어 보았다. 이 때는 컴퓨터의 활용이 오늘과 같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역시 손으로 직접 쓰는 인덱스카드를 권하였다. 인덱스카드를 크게 독서카드, 서지정보카드, 인용카드, 작업카드 등으로 세분하여 자신이 필요한 카드를 만들어 가면서 참고문헌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위의 강 선생님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 것 같으니 아마도 이러한 생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독서카드라는 것이 아주 폭넓은 것이었다. 내용 요약과 자신의 생각을 혼합시켜 카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의 내용과 중요도에 따라 '필요 없음'이라고 적는 경우부터 수 장의 카드 기록에 이르는 경우도 있게 된다. 강 선생님의 방식이 좀 더 인용카드 쪽에 가깝다면 이 독서카드는 보다 노트 정리에 가깝다.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는 점이 기존의 내 노트 필기 방식과의 차이점이다. 자신의 생각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것은 목적의식과 잠재적 결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또 다른 방법을 검색하였다. 인덱스카드-특히 명함 사이즈 정도의 작은 인덱스카드를 거의 메모 수준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연히 알게 된 것이지만 힙스터 pda(hipster PDA)라는 아날로그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일정관리 도구까지 접할 수 있었다. 대체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성하면서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글도 접했는데, 어떤 사람은 책상 위에 관련된 인덱스카드를 죽 모아 놓고 검토하면서 생각을 발전시킨다는 사람도 있었고, 책상이 아니라 벽에 붙여 놓은 코르크 판을 활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어제 확인한 것인데, 한양대 정민 선생님은 병원 차트처럼 카드를 따로 철해서 활용하신다고 한다.

이제 스스로 느끼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어떤 내용을 카드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현재는 여기에 대해 어떤 훌륭한 조언을 발견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사회학자 루만의 인덱스카드에 대한 긴 글을 찾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그는 평생을 인덱스카드를 작성하면서 공부하였다. 그의 인덱스카드는 1) 남의 생각이나 자신의 생각을 적은 카드, 2) 키워드 등 내용에 따른 분류 카드, 3) 서지정보 카드 등으로 분류되었다. 자세히 쓰기보다 그 대체만 소개하자면 1)의 카드를 2)와 3)의 카드로 링크시키는 방식으로 카드를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1)의 카드는 어떤 완결된 카드가 아니라 한 장의 카드가 또 다른 생각을 촉발시켰을 경우 그 카드를 작성하여 앞의 카드와 링크시키는 거대한 논리적 순서에 따른 그물망처럼 조직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의 카드를 제목으로 분류하지 않고 번호를 매겨 정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카드의 양은 어마어마해질지는 몰라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와 3)의 메타정보가 그 거대한 정보의 그물을 다시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작성하게 되는 인덱스카드는 대체로 이와 같은 체계로 작성하려고 한다. 먼저 타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에코식의 독서카드를 만드는 것이다. 에코처럼 저서의 전체나 일부를 조망할 수도 있겠지만 한 장의 인덱스카드에는 하나의 주제가 자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부분을 쪼개서 넣는 것이다. 논문이나 단행본은 장이나 절 구분이 그 대략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확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생각은 논리적 체계가 드러나도록 번호를 이어 매긴 카드로 작성하게 된다. 여기에는 루만의 정리 방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 편의 논문이나 책을 읽고서 정리를 하면서 일정한 기간-일주일이면 일주일, 하루면 하루 식으로-에 작성된 카드를 다시 색인작업을 한다. 키워드 등의 도구를 이용해 주제 카드를 만든다. 그리고 그 카드에는 루만이 그러했던 것처럼 관련된 카드의 번호를 기입한다. 루만은 또 서지정보카드를 작성해서 링크를 시켰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서지정보는 독서카드의 맨 앞에 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공부방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요즘 정요일, 한문학비평론, 집문당, 1990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의 서지정보를 예를 들어 3번 카드에 적는다.
그리고 각 단락별로 정리된 독서카드는 작성된 순서에 따라 3a, 3b, 3c ...로 기입 정리한다.
혹 나중에 카드를 검토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면 다시 넘버링을 한다. 3a1, 3a1b...(이 번호만 보자면 3a카드에 대해 든 첫번째 생각과 그 생각에 또 추가로 연결되는 두 번째 생각(b)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별도의 카드에 관련된 키워드를 달아서 관리한다. 즉 도덕론-3, 이런 식으로 관리한다.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 구상된 정리 체계이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보완방식이라든지 허점이 보인다. 키워드 방식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의 분류 방식을 원용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상위-하위 카드 등등.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카드는 질문과 답의 방식을 사용하여 체계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인덱스카드를 쓰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탐색 결과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아직은 카드가 어느 정도 모이지도 않았고 익숙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하지만 꾸준히 작성해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한약방의 약재농을 가지고 와야 할 정도로 많은 카드가 모이고 또 큰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물론 현실적인 방향으로 수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오히려 그 수정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카드를 작성하고 연결짓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즉 내 오랜 고민의 해답은, 우선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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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극은-정통 사극이 되었든 소위 퓨전 사극이 되었든-그 역사적인 배경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갖고 있다. 비록 등장인물의 생각은 현대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의 것은 어느 정도 그 당시의 것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훌륭한 사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인기몰이 중인 MBC의 <선덕여왕>을 보면서 이 대원칙과 관련해서 몇 가지 궁금한 생각이 생겼다. 짧은 생각이나마 간단히 서술해서 의문을 해소하고자 한다.

1. 대명력에 대해서

사다함의 매화라는 암호로 통하였는데, 그것은 알고보니 대명력이었다. 대명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법서이다. 쉽게 말하면 '아주 훌륭한 최신 종합 달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실의 권력의 배경은 천기를 미리 알고 적절히 행동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과학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기상현상은 정말 하늘님 아니면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미실이 그 하늘님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아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하늘님을 감동시키는 성공률이 높으니까 조정에서고 대중 백성들에게서고 보통 이상의 존재로 보이게 된 것이다.

이때 대명력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이름에서 보듯이 명나라와 관련이 깊어 보였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대명률이라는 법령집도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은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설마 당나라 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미실이 명나라의 역법을 알고 확인한다는 것인가!

위키피디아에 간단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대명력은 그 유명한 삼국시대-위촉오- 다음인 남북조 시대에 작성된 역법이라고 하였다. 남조 제 나라의 조충지란 사람이 이전의 역법을 보정하여 완성하였다고 하였다. 이 위진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평정한 것이 당 나라이기 때문에 미실이 그 역법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어리석은 네티즌들은 이걸 확인해보지 않았을까? 네이버에서 '대명력'으로 검색을 해본 결과 사전에는 위키피디아 내용이 나오고 몇몇 블로그에서는 선덕여왕과 사다함의 매화, 대명력 등으로 포스팅을 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포스팅의 내용인 즉 대명력은 명나라 달력인데 조선시대에도 이를 참고하여 역법을 운용하였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어느 시대의 극을 보고 있는지 잊었는지, 아니면 약간의 확인 혹은 따지기도 없이 그대로 긁어다 붙여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명력은 그렇다 쳐도 비가 오는 것까지 과연 미실이 예측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남는다. 소위 나비효과라고 그 미세한 영향을 다 검토하여도 알 수 있을까 말까한 국지적인 기상현상을 대명력이라는 거대한 역법에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그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는 미실이라는 인물의 권력이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넘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2. 활자에 대하여-전반적인 외국어 문제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대명력 포스팅을 보다보니 지난 회 내용을 스샷으로 모아놓은 포스팅이 있었다. 그것을 죽 보다 보니 궁금한 일이 또 생겼다. 바로 유려한 활자로 인쇄된 그리스어 책이었다.

최초의 활판 인쇄본이라고 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고려시대로 알고 있다.(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직지심경도 생각이 나서...) 그럼 그 이전에는 무엇으로 책을 생산하였나, 바로 필사다. 이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어로 된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생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주 귀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 귀족은 따로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필사 노예를 두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책을 베꼈다. 그런데 미실의 책상에 나온 책에는 활자체의 깔끔한 책이 놓여 있었다.

활자 자체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소문자로 쓰여 있다는 점 역시 확인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그리스어도 대문자로만 쓰여지다가 후대에 소문자가 고안되어 사용되었다. 필자의 생각에 소문자는 필사가 급증하게 될 때 등장했을 것인데 그러면 헬레니즘 시대이거나 중세 시대일 것이다. 로마인들은 자신의 말인  라틴어를 적을 때 대문자를 썼다. 그리스어의 대문자와 소문자를 다 알고 있으면서 자신들은 한 가지로만 쓴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래서 필자는 더욱 후대의 일-중세로 접어들기 직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야 물론 그리스어 역사를 검토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또 한가지 의문은 액센트 기호가 잘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는 액센트가 아주 중요하다. 세 가지 액센트가 존재하는 걸로 기억하는데 장음, 단음의 구분은 물론 유기음, 무기음의 표현까지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워서 필자는 그리스어 배우기를 포기하였다. 처음부터 액센트 기호는 있지 않았을 것이다. 후대의 고안이다. 액센트 기호는 언제 누가 시작했을까?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띄어쓰기. 그리스어도 한문과 마찬가지로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띄어쓰기라는 것은 매우 후대의 일로 6세기, 7세기에 띄어쓰기를 하였으리라고 생각하니 자못 수긍이 되지 않는다. 역시 확인해볼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 어제 방영분에서 라틴어를 쓰는 외국인이 등장했는데 당 나라 장안에서 로마까지 교역로가 존재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라틴어를 할 줄 아는 당 나라 사람이 존재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비즈니스 영어처럼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덕만은 아무리 세상 풍파를 많이 겪고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라틴어까지 알 수 있었을까? 로마-장안의 거리는 장안-계림 거리의 몇 배 이상이다. 자연스럽게 그 교역도 드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당 나라 도자기가 인기가 좋다고 해도 어떻게 그 거리를 자주 왕래하겠는가? 굳이 필요도 없다. 드물수록 가격은 올라가니까 오히려 상인들이 더욱 오지 않았을 것이다. 덕만은 그 드문 상인 왕래에서 라틴어를 배웠다.

중국인이 나온 김에 중국어까지 이야기해야겠다. 세종대왕의 어제훈민정음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5세기 중국의 말과 우리 말은 구조는 물론 소리까지 달랐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 제일 먼저 한자음을 중국의 음에 유사하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운서를 번역 출간하였다. 중국은 중국대로 살아 변화한 중국의 한자음과 반면 과거에 수입된 형태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은 우리나라 한자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한문은 문어로만 구사되는 일종의 사어(死語)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한자음은 한자가 전해질 때 같이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대체로 당나라 장안의 발음이 많이 전해진 것이다. 상고음이라고 하는 이 한자음은 오늘날까지 큰 변화없이 보존되고 있다. 물론 우리말의 성조 체계가 없어지면서 성조가 탈락되고 구개음화 등이 진행되면서 여러 음이 합해지고 같아지게 되었지만 오늘날의 중국 한자음이 갖고 있는 발음보다 훨씬 더 이백과 두보의 말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상고음을 연구하기 위해 우리 한자음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선덕여왕의 때는 당나라 전성기이다. 이때의 중국인이라면 지금의 중국 백화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한문 읽기와 비슷하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중국 상인의 입에서 울려퍼지는 북경 중국어라니... 당시의 북경은 변방중의 변방, 오랑캐의 땅으로 여겨졌는데 말이다.


혹은 말할 것이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서 본다면 극이 재미없을 것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고 검토하지 않고 본다면 극의 재미에 깊이가 없을 것이라고. 어느 것이라도 새 것을 대한다면 공부하는 마음을 따질 수 있다면 재미있는 와중에 지식을 확충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보다 더 깊이 볼 수 있다면 지식의 확장은 사소한 부분일 것이다. 그냥 놓쳤을 사건의 작은 의미도 새끼줄로 굴비를 엮듯이 연결되는 경험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드라마 감상이 재미없는가? 해보기 전에는 말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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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하게 되어 우리과 선생님들을 모시고 호암교수회관 파인 홀에서 조촐한 저녁식사 겸 사은회를 했다. 본래 사은회란 학생들이 단체로 모여 스승님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자리이지만 오늘은 우습게도 선생님은 모두 5분, 학생은 3명이 참가해서 아주 조촐한 자리가 되었다. 독어교육과가 사실 규모가 큰 과가 아니니, 이 부분은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식사를 천천히 하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우리 졸업생의 앞길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평상시 품고 있었던 이야기들, 선생님들께서도 바쁘셨는지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오고 갔다.

식사를 다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있었던 이야기 중에서 흥미로웠던 말씀들.

- 조주선사에 대한 소개와 喫茶去
- 君子不器

'끽다거'를 '차나 마시고 가지'로 옮기신 한 선생님. 인생을 한 발자국 멈춰서 바라보는 여유와 그 속에서 깨달아지는 삶의 내용을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에서 '그릇'의 의미를 '작은 그릇'으로, 이미 일찍 완성되어 버린 그릇--이러니 작은 그릇일 수밖에... 대기만성이라는 성어가 생각난다--으로 옮기시고, 이는 군자가 해야할 바가 아니라며 너무 일찍부터 무엇을 해야지라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권 선생님의 말씀.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나고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알아들은 만큼 옮기고 있는 것이다. 혹,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글쎄,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내 나이와 주변의 시선, 부모님에 대한 걱정 등으로 지금의 내가 미완성, 혹은 수준 미달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전해 듣는 소식이 누구는 어느 회사에 취업했다더라, 누구는 벌써 시집장가가서 애가 몇 살이라더라 등등이었으니 어느 것 하나 내세워 보여줄 것이 없는 나는 그들에게 보면 미완성이고 수준 미달의 대학생활을 한 것일 테다. 나도 스스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들과 비교해보고 나 자신을 자꾸 재촉하기만 했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졸업을 맞는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나는 두서없이 솔직하게 이야기 하였다.

"시간이 다 되어 쫓겨 나가면서 뒤돌아 보니, 대학 생활에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대학원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이게 과연 잘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걱정스럽습니다."(대략의 요지다)

이제 짐을 좀 내려 놓아야겠다. 정확히 말하면 엄살을 그만 부려야겠다. 막상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서 빨리 뭐든 되어야 해'라고 스스로 재촉하는 것은 아직 들지도 않은 짐을 보면서 '어서 빨리 저기에다 옮겨야 해' 하는 것과 같다. 이는 엄살이다.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 간단한 사실을 그동안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것은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도 갖지 않은 내 마음의 괜시리 분주함 때문이었고, '작은 그릇'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메추라기와 부엉이(올빼미?)의 마음 때문이었다.

물론 이 과정이 큰 쓸모를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매일 '여유가 가장 중요해, 난 작은 그릇이 아니야'라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것을 변명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여유가 없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 쓸모 없음은 더 큰 쓸모를 위하는 것이다. 쓸모 없음 그 밖에 없다면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현재 난 목표를 나름대로 크게 세웠다. 선생님들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배고픈 길'이라고 하셨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 웃을 지도 모르지만 난 내 길, 그 길을 '꾸준히' 가련다. 그 길 위에서 가끔씩 차를 마시며 인생의 맛도 함께 보고 다시 길을 가고, 군자는 (작은) 그릇이 아니라고 했으니 무엇이 되는지 끝까지 가 봐야겠다.

***
내 글은 이렇게 교훈적인 분위기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면서도, 주제 넘게 세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변명하니,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생각이고 활동이다.

무엇을 딱 부러지게 판단해주고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일을 누가 쉽게 할 수 있을까? 가히 참사람이 되어야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참사람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이런 내가 하는 말이 자기 반성과 자기 교훈 외에 다른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야말로 기만이고 위선이다.

모자란 글을 다 쓰고 나니 갑자기 변명하고 싶어져서 짧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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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위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