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썰을 뿜어 내야 하는 것은 블로그에 쓰고, 그냥 간단한 아이디어나 생각은 트위터로 남겨야겠습니다.
블로그도 제대로 못 하면서, 트위터까지 손대다니, 난...
우연히 검색을 통해서
알게된 책.
한문학
연구자로 유명하신 정민 선생님의 책으로 다산 정약용의
공부법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제목을 먼저 살피자면 공부법 혹은 독서법이
아니라 지식경영법이다. 이는
다산의 공부법이 막연히 – 곧 내가 하듯이 –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다산이 항상 필요한 책만 읽고 저서를 작성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영'이라는
두 글자가 의미하는 바, 대단히
체계적인 방식으로 공부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 책이 '지식경영법'이라는
그리 울림이 좋지 않은 제목을 갖게 되었다.
다산의
공부를 대단히 체계적인 것으로 보아서일까?
이 책의 구성 역시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목차인
10강 50결
200목은 다산의 체계적
공부를 정민 선생님이 흉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겠지만 다산은 미리 범례를
세워놓고 개요를 작성해 놓은 다음 책을 썼다고 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라.
10개의 큰 꼭지를 마련하고 다섯 장을 각각 안배하고
세세히 4조목을 설정하여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
중에서 10강에 해당하는
것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단계별로 학습하라
2.
정보를 조직하라
3.
메모하고 따져보라
4.
토론하고 논쟁하라
5.
설득력을 강화하라
6.
적용하고 실천하라
7.
권위를 딛고 서라
8.
과정을 단축하라
9.
정취를 깃들여라
10.
핵심가치를 잊지 말라
공부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아주 귀한 책으로 여겨진
것은 당연하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미친척 책을 읽어보았다.
토요일에 배송되었고 월요일에 읽기를 마쳤다.
이
책은 그저 교양으로 읽히기보다는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서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쓰여진 것이라고
했다. 공부하는 사람들,
특히 논문을 쓰거나 저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읽어보고 다산의 지식 생산,
관리를 참고하여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산의 카드 작업 과정, 서신을
통한 의견 교류, 질정,
제자들과 함께 정보를 조사하고 조직하여 새로운
저작을 만들어내는 과정 등을 상세히 보여주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운 내용의 연속이었다.
마침 인덱스카드 쓰기를 결심하였는데 이렇게
카드 작업의 대가 – 다산은 물론이거니와 정민 선생님도
– 를 알게 되었고 그 과정을 제법 꼼꼼히 살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일요일 아침 7시쯤 교회에
가는 1시간 여의 버스
여행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십상인데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 책을 읽으니 잠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
약간 번잡한 감이 들었다. 위의
10강을 보더라도 초반에는
매우 방법적인 측면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방법보다는 다산의 신조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내용이 나오게 된다. 즉
지식경영법은 전반부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지식경영법보다는 경영신조,
경영원칙 등이 소개된다.
책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그의 지식생산의
과정이기 때문에 후반에는 전반부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언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후반부에도 반복적으로 그의 카드작업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전반부는
매우 긴장감있게 책이 읽히는데 후반부는 다소 지지부진한
감이 있다. 다산이
<성호사설>이
번잡하여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이 책도 ‘다산이라면 더 추려서 간략하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 독서하는
사람이 감히 입에 담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책 읽기가 고달파진다. 졸린
눈 비벼가면서 하는 혼자만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후반부 중심이 된다고 보는 다산의 여러 실천적인
원칙들의 중요성이나 그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목적
– 저자가 다산의 그 글을 몇 번을 읽어가면서 어렵게
알아내었을 그 알짜배기만을 알고자 하는 저속한 욕심
– 을 지닌 독자에게는 뒷부분의 이야기는 누가 해도
좋을 소리,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불과하다. 특히
맨 마지막 ‘조선중화법’은 거의 조선후기 한시의
몇몇 경향을 해설하는 느낌이었다.
다 좋지만 이 순간 저속한 욕심을 가지고 텍스트를
대한 내게는 그리 감명을 주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박희병
선생님의 <선비들의
공부법>이라는 책이
있다. 저속한 나는 또
공부법을 알아내고자 이 책을 들추어봤지만,
옛 선비들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음에 그만 나는
책을 덮어버렸다. 그
공부법은 修身법이었다. 그에
비하면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은 저속한 나의 입맛에도
괜찮은 책이다. 독자의
싸구려 욕심 때문에 다산 선생의 공부에서 배워야 하는
저러한 실천적인 원칙의 깊은 맛은 거부하고 얕은 맛,
작은 기술만 찾아서 그 맛을 전부 알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건진 것은 일단 다산 선생의 독서와 저술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정수를 깨쳤다고 볼 수 없지만.
일전에 같이 공부하는 형님이 권해준 에코의 논문작성법도 쉬는 마음으로 틈틈히 다시 읽어 보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시 읽기는 새롭게 읽기인 것 같다. 이 책도 지금은 이렇게 대강 읽어서 재미가 있네 없네 하지만 한 번 더 읽으면 그 초점이 또 달라질 것 같다. 분명 점점 뒤로 뒤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가 재미없게 느꼈던 그 부분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바로 그 탁월한 생각이 그 방법을 운용하였던 것이다. 다음에 읽을 때는 그의 문제 의식에 좀더 무게를 실어 읽어 보아야겠다.
막 쓴 글이라 내용 정리가 깔끔하지 않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들? 책을 많이 읽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사람들.
이 책을 권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 글쎄, 한 가지라도 더 알면 더 넓게 볼 수 있으니까... 도움이 안 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고로 ‘없다.’